
06:00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믿을수없는 시간에 눈이 떠짐에 새삼 놀란다. 첫날이라 시차적응의 문제인듯 하다.
여행책자를 들고 좁은 골목을 따라 숙소와 가까운 Hyde Park에 걸어갔다.
긴팔위에 얇은 점퍼를 입었음에도 오전의 바람은 무척 차다.

공원에 접어들자 시원스레 펼처진 잔디밭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서울의 올림픽공원 쿨동산을 연상케하는 잘 정리된 잔디밭이 끝없이 펼쳐져있고, 사람들이 잔디밭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잔디밭위에서 뒹구는 광경이 서울시민의 눈에는 무척이나 낯설다. 어디선가 경비가 시끄러운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나올것만 같았다. 승마코스로 보이는 흙길이 뻗어있고 말이 지나다님을 암시하는듯 말똥이 눈에 띈다.
이날씨에 런닝수트입고 조깅하는 사람들. 주말을 맞아 도시락싸들고 커다란 개와 함께 소풍나온 가족들. 연인들. 오전중이라 생각보다는 한산한 편이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잠시 그들을 바라본다. Serpentine호수에는 오리,기러기,거위(?)들이 노닐고 뒤로는 덩치큰 까마귀들, 빠지지않는 비둘기 온갖 잡새의 향연에 괴로워 하고 있을 즈음, 호숫가 저 반대편에서 눈을 의심케 하는 작자들이 이 엄동설한에 수영을 하고있었다. 대단하다.
Hyde Park 하나만으로도 런던이라는 도시가 너무나 부러워진다. 자리를 옮겨 이잔디밭 저잔디밭을 밟아보고 누워보고 뒹굴어본다. 책이 한권 있었더라면 아마 이곳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으리라.
시간이 얼추 11시가 되어가고 근처의 Buckingham궁전이 궁금해졌다.
이곳의 거리는 따로 길을 묻고 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내표지판이 너무나 잘 되어있다. 궁금해질만 하면 나타나는 이정표를따라 걷다보니 궁전의 정문이 나와버린다. 곧이어 거행될 근위병 교대식 때문인지 엄청난 인파가 군집해 있었다. 5월의 런던은 생각만큼 한국인 여행객을 만나기가 쉽지않은듯 하다. 인파속에 한국인인듯한 무리는 보이질 않는다.

경찰들이 깔리고 곧 교대식이 거행되었다. 말을 탄 선두가 길을 트고 곧이어, 빨간 제복에 검고 긴 술이 달린 모자. 온몸에 영국 근위병이라고 써있는 무리들이 행진을 하고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호와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담배연기들. 그다지 정돈되어보이지 않는 근위병 교대식. 이곳을 지나다 시간이 우연히 맞았음에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여기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절도있는 경복궁행사를 너무나 보여주고싶다.
모노포드에 매달린 카메라 탓인지, 관광객들이 서슴없이 카메라를 들이밀며 기념촬영을 부탁한다. 한두번은 웃으며 성의껏 눌러주지만, "자꾸 부탁하면 돈받는다 얘들아."

다시 이정표를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한다. 밑면이 직사각형이 아닌 건물들이 거리와의 조화를 너무도 잘 이루고 있다. 상당히 이국적인 외향을한 Westminster. 시끄럽게 울려대는 빅벤. 지금 난 런던에 와있음을 알리는 land mark들이 두앞에 펼쳐진다.
잠시 Thames강변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었다. 주머니에서 디스플러스를 꺼내물고 잠시의 여유를 찾는다.

여행책자라고 들고나온 책에 이르길 '중심부 100배가이드'라는 차트를 작성한 사람은 대단히 외로웠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정해진 루트를 따라다니다보면 어디에 인간이 가장많이 모여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가 에대한 순위를 매기고 싶어진다. 순간, 이 무거운 책자가 앞으로의 내 여행에 족쇄가 될것같은 불안감이 책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엄습해 온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뒤로한채 Trafalga Sq.를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뒤라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근처에 보이는 맥도날드에서는 인천'국제'공항에서 환전한 구식 파운드는 받지 않는단다. 한참동안 황당함을 광장에 앉아 달래고 있을무렵 런던의 무식한 비둘기들이 서커스를 하고있었다. 정말 사방에서 얼굴에 스치듯이 날아간다. 파고다공원파 애들은 배가불러서 잘 움직이지도 않는데 이것들은 있지도 않는 고추장을 먹었는지 부담스러울정도로 생기가 넘쳐보인다. 광장 주변으로 즐비한 번화가와 비둘기를 뒤로한채 또 걷기 시작한다.

Picadilly Circus. 커다란 삼성의 광고판은 공사중이다. 갑자기 눈 밖에 보이지않을 정도의 흑인이 말을 건넨다. 담배가 한화로 만원가량 하는 이곳에서는 길가는 흡연자에게 너무나도 당당하게 담배를 구걸하곤 한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그는 담배한가치에 세상을 얻은 눈빛을하곤 연신 악수한 손을 흔들어댔다. 담배많이 피고 오래살아라... 사진을 찍으려다가 너무 피곤한 몸에 모든게 귀찮아졌다. 사실 흑인을 가까이서 찍어본 경험이 없어서 노출에도 문제가 있었을게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골목골목을 따라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한다. 너무나 피곤한 하루. 지친몸을 이제 쉬고싶 었다.

BIgben, London
숙소에서 m을 만났다. 저녁식사를 마친 그녀는 빅벤의 야경이라는 카드를 던졌고,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에 호기심과 피곤함이 격렬한 사투를 벌였다. 인간의 호기심은 무척이나 강하다. 게다가 어제 살짝맛본 런던의 밤거리에대한 갈증은 이내 숙소를 나서게 하였다. 처음 타보는 예쁜 이름의 런던 지하철. 그들의 멀대같이큰 키와는 어울리지않는 작고 지저분한 지하철이었지만 잊을수 없는 목소리 "Mind the GAP"을 실제로 확인할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이 아쉬워 Stella를 2캔씩 사들고 젊음의 밤을 보내려 Trafalga sq.를 다시 찾았건만, '그곳엔 m과 나, 그리고 보드타는 흑인 청소년 3명뿐이었다.'
설상가상, 늦은시각. 동전바꿀곳은없고 우리는 집에 걸어와야했다.
2005.05.22. zork2k -Lond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