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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짐을 풀 곳이 필요했다. 지금 이시각 Termini역엔 동양인 여행자라고는 나밖에 없는지, 여기저기서 픽업나온 한국말이 능숙한 아저씨아줌마들이 나에게 접근해 숙박업소 소개를 하고있는 풍경이 왠지 늦은시각 서울근교 유원지에 나온기분이랄까, 로마의 첫인상은 그다지 유쾌히자 않았다. 말투로보아 그들 대부분이 이곳에 거주하는 조선족같았고, 마땅히 정해놓은 계획도 없기에 일단 그중 한분을 따라 나섰다. 마침 디지털카메라의 메모리도 채워져 가고있는 상황에 cd writing을 해주겠다는 제안에 흥쾌히 응했다. 예상대로 숙소는 역에서 멀지않은 차이나타운한가운데 위치한 아파트였다. 주위엔 온통 검은눈과 검은 머리를가진 중국인들. 한문으로 씌여진 간판들. 중국에 와 있는 기분이다. 아직 많은곳을 다녀보진 못했지만, 중국인들 대단하다. 어딜가나 이렇게 북잡스럽게 모여서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어가고있지 않은가. 이곳 물가도 싼편인지 아침을 거하게 차려줘서 영국을뜬지 2주만에 한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숙소도 상당히 넓고 쾌적한데 세상에나 밤에는 늦어도 11시반까진 들어오랜다. 차이니즈풍의 괴담을 섞어서 겁을 주시는데 정도껏 했으면 믿을뻔했으나, 그분들이 말하는 위험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스펙타클한 스토리였다. "최대한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원채 야행성인지라.....일단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라야겠지요."


유럽전통양식의 울퉁불퉁하고 모난 돌바닥에 서울의 러시아워를 방불케하는 교통체증, 역근처에 서성이는 집시들. 시끄러운 사람들. 질서정연하고 조용한 독일어권국가를 거쳐 헝가리를 다녀온 나로서는 오랫만에 맞이한 북적이는 도시가 한편으로 반가웠다. 사람사는곳 같다. 역내의 여행자 정보센터에서 구한 지도를 한장 달랑 들고 길을 나서는데 무지하게 뜨겁다. 반팔차림으로는 화상을 입을것 같고 긴팔은 덥고 상상했던것보다 영어가 안통하는 진퇴양난의 상황. 맵을 집어들고 덜더워 보이는곳을 택하기로 한다. 말안통할땐 역시 호텔이 최고다. 어느정도의 대화가 통하고 친절하기까지하니말이다. 첫번째 기점은 오드리햅번이 총총 뛰어내려오던 Piazza di Spagna. 물어물어 찾아가다보면 일단 지도의 지명이 친숙해진다. 오토바이타는사람이 유독 많아서 길물어 보기에도 제격이고. 그리스를 위한 교두보 정도로 생각했던 이태리가 점점 마음에 들어가고있다. 이곳의 반나절동안 타는듯한 태양만큼 인상깊은것은, 너무나도 fashionable한 사람들이다. 일단 경찰이 장난이아니다. 갖가지 선글라스는 기본이고 여기저기 달린 귀고리. 한껏 멋을낸 수염. 40-50대로 보이는 대부분의 아저씨들또한 반지르르한 올빽머리에 찰랑찰랑한 세련된 정장바지기본에 칼구두. 임산부를 능가하는 엄청난 체격에 심하게 과감한 여성들의 복장은 전유럽의 트렌드인듯 보인다. 복장만 보면 여행자인지 현지인인지 금방 구분이 갈만하다. 잉글랜드와 독일의 거인들 탓이었을까, 여기는 내가 작은키가 아니다. 이사람들 옷은 하나같이 쫙빼입었는데 키는 작고 짙은 곱슬머리는 내가 남부유럽에 와있음을 실감케 한다.





under construction...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스크림먹는 오드리햅번도 없는게 오늘은 휴일이 아니었던게다. 계단에서 하도 아이스크림먹어서 음식물 자체가 금지랜다. 많은 젊은이들과 여행객이 들끓는 관광지를 마주보고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법한 브랜드가 즐비한 명품거리를 따라 걷는다. 양갈래로 늘어선 건물덕에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주니 눈요기도 하고 걷기엔 안성맞춤이다. 그때 어디선가 타는냄새와 연기가 치솟았는데 크지 않는 화재가 발생했거나, 누군가 옥상에서 뭔가를 태우는것 같았다. 스펙타클한 억양의 이태리어와 각종 세계언어들이 부산을 떨고있는 광경은 이내 수그러든 연기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the city of the fountain. 지나가는곳곳 광장광장마다 중소규모의 분수가 즐비한동네 로마. 그에 걸맞게 여기저기서 쉽게 만나게되는 포세이돈삼촌이 무척이나 반갑다. 이럴줄알았으면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를 들고 나오는건데 희미한 그리스로마신화가 머릿속에 맴돌고있다.





뜨레비앞에 서다. 온통 관광객 천지였지만, 오케아노스인지 포세이돈인지 아직도 헷갈리는 그에게 인사를 드리기위해 기꺼이 마다치않고 이곳을 찾았다. 여기저기서 동전을 던지는 사람이 눈에띈다. 뒤돌아 동전을 던지며 로마에 다시오기를 기원한단다. 그래서인지 세계 각국의 동전이 물밑에 반짝이고있다. 최장 두달이라는 빡빡한 일정하에 넓은 이태리 이곳저곳을 경험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루도 되지않은 이곳에서 확신하게 된것은 두달을 이곳에 머물러도 모자랄것 같다. 내가 밟고있는 이땅곳곳에 3천년이 넘는 역사의 숨결이 그대로 베어있다. 아직도 도시여기저기서 발굴공사가 진행중인듯 하다. 아무데나 파면, 유물이 쏟아질것만 같다. 포세이돈삼촌, 나중에또봐요.





얼마나 걸었을까, 마치 여행초기의 walking holiday를 연상케 할만큼 걸은것 같다. 야간열차를 탄 다음날 이토록 걸어다니는 미련한 짓을 그만 접고 식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무렵, 베네찌아광장 즈음에서 길거리 사진을 찍고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와락 껴안았는데 분명 여자의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말로만듣던 집시의 습격? München에서 만난 동갑내기 녀석들이었다. 이렇게 반가울때가. 근데 그보다 배가 더 고프니 일단 먹으면서 얘기하자꾸나. 이태리 식당에 들어간 우리는 이름모를 파스타와 피자를 무작정 이것저것 시키기에 바빴다. 이태리의 중심 로마였지만, 확실히 물가는 서유럽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맥주에 이것저것 벌려놓으니 세상에 부러울것이 없었으나, 맛은..........대체 이 싱거운 파스타는 어떻게 삼켜야 하는것인가 열띤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아쉬운건, m녀석도 함께했다는데 오늘아침 Assisi에 갔댄다. 서울에서 꼭한번 뭉칠것을 다시한번 약속하며, 그들이 잘아는 젤라또 집으로 안내했다. 로마에서 며칠 있으면서 하루도 빠지지않고 들르는 곳이란다. 여행 출발전부터 귀에 못이박히도록 들은 이태리젤라또는 과연 명불허전이다. 상큼한 과일맛이 그어떤맛을 먹어도 그대로 살아나고있었다. 더운 날씨도 한몫 하겠지만 삼시세끼 이것만 먹고 살수있을것만 같다. 근데 이녀석들은 만날때마다 그도시를 뜨는 야간열차를 예약해놓고있으니, 이제 Nice로 갈참이란다. 난 조만간 그리스로 향할것임에, 이번엔 확실한 이별이다. god bless you.


잠시 모노포드를 챙기러 숙소에 들렀을때, 저녁식사를 하고 나가란다. 완전식사는 빠방. 이래서 한인민박집을 찾아다니는구나 싶다. 게다가 삼겹살이라니. 매우싸보이는 댓병와인에 과일들 까지.. 아, 밤거리를 위해 남은 쏘주페트를 꺼내야되나 말아야되나 고민하다가, 꺼내고야 말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주인 내외분은 주무실때까지 금주, 숙소에묵고있는 몇안되는사람들은 다들 술을 안했다. 덕분에 살짝 목만축이는 선에서 마칠수 있었다. 남부에 내려오니 확실히 해가 빨리진다. 나는 지금 저녁 9시쯤에 어둑어둑해짐을 신기해 하고있다. 어두워져가는 골목과 퀴퀴한 냄새..로마의 뒷골목은 아무데나 노상방뇨해도 전혀 죄책감안들게 생겼다. 문득 런던에서 public toilet을 찾자 어느 술취한 여자가, 공원 나무뒤를 안내해 주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 누가 물어보면 아무데서나 일보라 일러주리라 마음먹어본다. Termini역이 대략 시의 동쪽끝에 붙어있는지라 걸어서 길찾기는 매우 쉬워 보였고, 버스 종점이라 아무데나 나가도 찾아오기 쉬운것 같아 11시반이라는 숙소주인아주머니의 로마법은 까마득히 잊은채 일단 걷기 시작했다.





공원을 돌아나가는데 역시 꼬마집시들이 여기저기 눈에띈다. 손에들고있는 모노포드가 흉기로 보였는지, 접근하는 사람이 없어서 매우 심심하게 길을 걷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있다. 야자수같은 나무들과 해질무렵의 하늘빛깔이 누구나 시인을 만들법할 찰라에 드디어 집시들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온다. "오빠가 20유로지폐밖에 없거든?" 그냥간다...이럴수가. 뭐 가까이와서 여기저기 만지면서 소매치기해가길래 갖고있는 칼을 보여줬다느니, 여럿이 달라들어서 꼼짝못하게 붙잡고 돈을 강탈한다느니의 애초부터 과장된 스토리가 눈앞에서 허구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을줄 아는 연기자에 불과했다. 많은 여행자들의 입담은 입담을타고 바람에실려, '이탈리아에서 발을 헛디뎌서 무릎이 까진 이야기'가 영국에가면 '강도와 17:1로 붙어서 격전끝에 힘겹게 물리치고 돌아서는 찰나 어디선가 나타난 마피아가 오토바이에 그를 매달고 1km를 달리는'영화로 변모한다. 이들 스토리는 다른도시의 숙박업체들을 경계하기위한 도시마다의 괴담으로 숙박업소 주인들에의해 눈덩이처럼 커진다. 얼마나 쉬었을까, 이제 제법 캄캄해져가고 있다.





어쩐지 여기저기 slr에 커다란 삼각대를 물린 젊은 일본인들이 보인다 싶었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과 콜로세움이 눈앞에 펼쳐졌다. 막시무스의 함성과 함께. 팍스로마나를 구가했던 로마병들의 투구가 아른거린다. 커다란 돌덩이 앞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역사는 이러한 힘을 갖고 있었던거다. 뒤로 펼처진 건물들의 잔해는 Foro Romono일게다. 어두워서 구분은 쉽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옛 건물의 잔해가 어슴프레 빛을 발하고 있다.





멀지않은곳의 뜨레비를 다시 찾다. 포세이돈삼촌은 아직도 그자세 그대로 지키고 있구나. 가장 먼저 눈이간것은 이곳의 수질...분수물이 아닌, 이곳에 모여있는 아가씨들의 화려한 미모였다. 전세계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이곳에 다 모였나보다. 세상에 이럴수가. 눈치없는 꽃장사가 나한테 꽃을 팔려한다. 내옆엔 북미에서온듯보이는 매우 듬직한 아줌마들이 있었다. 내가 할일은 묵묵히 셔터를 누르는것뿐.. 시간은 눈치없이 어느새 자정을 지나고있다. 버스에 잽싸게 올랐지만 역에 닿았을때 시계는 새벽1시를 향하고 있었다. 공중전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동전을 먹어버렸다. 꺼내보려고 노력해보지만, 역무원이 집시 쳐다보는듯한 눈길로 주시한다. 쓰미마셍~ 하늘은 잔뜩 흐리고 돌풍이 몰아쳐 여기저기서 작은 돌개바람이 쓰레기들을 휘몰아치고있다. 이 냄새나는 길거리에 쓰레기들과함께 보헤미안이 되어야하는가의 갖가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다행히 아주머니가 아직 잠들지 않고 기다리고계셨다. 처음만난 여자와 식당에서 근사하게 시켜놓고 보니 지갑을 집에 놓고나왔는데, 아무말없이 그녀가 계산을 할때의 느낌이랄까.... 피곤한 로마의 첫날이 저물어간다.


2005.06.07. -zork2k- Rome


April 2nd, 2006 20:00 April 2nd, 20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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