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즈음 잠에서 깬것같다. 졸린눈을 비비며 정원으로 나왔을때 숙소는 텅텅 비어있는듯 하다.
잠시후 감기기운이 심해보이는 J형이 눈을 비비며 나온다.
"저기 꼭대기 걸어올라갈라면 얼마나걸려요?"
'기차있어요'
"걸어가면 먼가?"
'저기 3천미터 넘어요"
JungfrauBahn. 말로만 듣던 산악열차다.
여기 올라가서 안개속에서 헤메였다는 pd형들의 말이 떠올랐다. 날씨는 많이 화창한데 산 기후라는게 봄바람난 처녀 치맛자락같아서 걱정이다.
둘은 카메라하나씩 달랑 메고 기차에 올랐다. 대빵 딱딱한 나무의자에 몸을싣고 서서히 기차가 출발한다.
요정이살것같은 알프스의 한가운데를 기차로 오른다.
Klein Scheidegg.
이곳에서 기차를 갈아타나보다. 전부 내린다. 아닌가?
아무렴 어때. 난지금 알프스한가운데 있다고.

뭔가 하이디가 뛰어나올만한 배경이 펼쳐졌다. 따뜻한 차한잔과 담배한모금으로 360도 어디를 둘러봐도 액자속 풍경일듯한 이곳에 빠져들어가고있다.
"에델바이스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요?"
'어떻게 생겼는데요?'
"아니 물어본건데...."
'......'
스위스에 오기전에 에델바이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조사해보지 못했던게 한이 맺힌다.
"저기 올라가지말고 에델바이스찾아갈래요?"
'....'
그렇다.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근데 그냥 무작정 초원을 걷다보면 빙하에서 얼음썰매타던 하이디가 뛰어나와 내게 말해줄것 같았다.
'zk, 이게 에델바이스야'
응답하라 하이디.

기차가 도착했다. 제법 경사진 레일을 오르기 시작한다.
"좀 졸리지 않나요?"
'그러네요. 높은데라서 그런가?'
"말씀 낮추세요. 저보다 한참 형이신것 같은데"
'네'
결국 끝까지 존대를 쓰신다.
음식점 젊은 사장님같은 이분은 여행을 끝나고 양키스 경기보러 뉴욕가신댄다. 부러운데 계속 졸립다.
고산병인가? 여기저기서 두통을 호소하는사람도 있다.
나는그냥 졸립다. Jungfrajoch. 어제 그 할아버지 말마따나 처녀 젖가슴이라 그런가. 음기가 충만한지 온몸이 나른하다.
어느새 기차는 동굴로 향하고있다. 청룡열차 타듯이 경사가 심해진다. 그리고 춥다.
아니, 춥고 졸립다.
2시간여를 힘겹게 올라온 기차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에 정차했다.
이곳은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높은 역임 어쩌고저쩌고 하는 기념비가 적혀있다.
그렇게 안적어놔도 만년설과 추위가 온몸에게 말하고있다.
잠시 휴게소에 들렀는데 나참..컵라면을 팔고있다. 이런 어이를 엿바꿔먹어도 유분수지. 나는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박영석대장이라도 된마냥 눈에 둘러싸여 컵라면과 코코아로 끼니를 때운다.
밖으로 나왔다.
한 10분간 말을 못했다.
다행히 날씨가 너무나맑다. 우리집 망치가 보일 지경이다. 그러고보니 아직 망치는 눈을 못봤네.
산에오니 역시 산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생각이 제일먼저 난다.
이 비경을 꼭 보여드리리라.
주위엔 만년설을 퍼다가 요거트에 섞어 먹는 인간들이 보인다. 재미있어 보인다. 근데 이시려울것 같아.
고도가 높아 산소가 부족한지, 담배가 잘 안빨린다. 일부러 디스를 남겨뒀다. 템즈강가에 앉아서 한대. 알프스 위에서 한대. 같은담배인데 맛이 참 다르다.
유럽을 나와 돌아다니면서 느끼게 되는건, 얘들은 참 자연경관을 있는 그대로 잘 보존한다.
반대로 그리하여 안전시설이 그다지 철저하게 되어있지는 않다.
대충 넘어가면 시체도 못찾을테니, 눈에서 미라가 되고싶은 사람은 마음대로 하라는듯이 위험선이 쳐저 있는 정도다.
사람은 누구나 탐험정신이 있지않은가.
아무도 밟지않은 눈을 밟아보고싶었다.
설마 푹 꺼지겠어. bigfoot이 구해줄꺼야. 근데 알프스에도 사나?
주위의 우려를 무릅쓰고 낑낑대며 바위에 올라 앉았다.
바위가 평평하지않고 절벽을 향해 경사져있다.

전망대 안으로 들어가봤다.
얼음동굴.
이건뭐 엄청난 크기의 빙하내부에 굴을 뚫어놓아 별거 한게없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빙하다. 그리고 춥다.
흘러흘러 밖으로 나와보니 저멀리 점이 보인다.
근데 신기하게 점이 움직이고있다.
등반팀이었다. 숨쉬기도 어려울텐데...
반라의 할아버지가 보인다. 눈의 반사광에 직사광선에 아주 홍인(紅人)이 되셨다. 저렇게 웃도리 벗고다니면 추울텐데.
썰매장, 스키장도 보인다. 공짠가부다.
뭐 시설이 따로 되어있지는 않고 그냥 눈밭에서 뒹구는거다. 만년설 천연 슬로프였다.
썰매판 하나 빌려서 눈밭에서 굴러봤다. 다듬어지지 않은 눈밭이라 속도가 엄청나다. 잘 튕겨져 나가면 미라되기 쉽상이겠다.
겨울에 이 산 전체는 자연스럽게 슬로프로 변한단다. 내가 올라온 모든길이 눈에 덮혀 영원히 내려가는것이다.
죽을때까진 내려갈수있을까?
겨울에 꼭 다시 찾고싶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곳에서 정기를 다 빼앗겼는지 돌아오는 기차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이 들어있다.
나도 졸린다.
내려가서 향긋한 와인으로 휴식을 취해야겠다.
2005.06.21. 알프스의 설인 -z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