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전에 이곳으로 오는 기차를 본 기억에 주저없이 고속버스로 생각을 굳혔다.
출근시간인지 거리가 부산하다. 터미널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물어봐야하는데 인간들 겁네 바쁜 표정이라 선뜻 말을 걸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어 물어물어 051버스편 안내를 받았다.
문제는 자기도 어디서 타는지를 모른단다.
아침도 굶고 기운도 없는지라 근처 여행사에서 항공표 끊어서 넘어갈까 하는 나약한 생각을 하고있을 무렵 버스티켓팅 사무실이 보인다. 근데 여기가 아니라네.젠장..이근처가 아니라 오모니아 광장근처라니. 한참을 걸어 찾아탄 버스. 반갑다 051 잊지않으마. 051이 부산 지역번호던가 하는 잡생각을 하며 터미널로 향하고 있다.
창밖으로 지나치는 버스정류장에 써있는 그리스문자를 초심자가 한눈에 읽어내기란, 지나가는 그리스여자 붙잡고 내 이빨에 붙은 고춧가루를 젓가락으로 떼어 달라는것과 비슷한 난이도 일게다.
하는수없이 안내방송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우여곡절끝에 도착한 시외 터미널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종점이었다. damn it.
역시 사람이 배고프면 여유가 없어지는가.
막 출발하려는 고속버스가 보인다. 나름의 희망을 갖고 티켓팅시도. 혹시나가 역시나 매진이다. 니들 주말도아닌데 항구로 가는 이유가 대체 뭐니.
전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진리 역이나 병원근처 음식점은 가지말라는 금기를 깨고 남부유럽에서 제일 맛없는 피자와 펩시로 요기를 한다.
한참을 달려간 Patras. 반갑다. 그모습 그대로 여기저기엔 볕에 그을린 건장한 사내들이 돌아다닌다. 항구에 온것이다.
터미널 근처의 그때 그 수블라키 가게를 찾았다. 처음 이 가게에 왔을땐 3명이었는데. 터키로 따라갔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3초간 머릿속을 스친다. 외로움일까. 혼자한지 아직 만 48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내 배를 채우며 잠시 착각했던 감정이 사그라들고 있다. 이내 입가에 미소를 되찾았다.
전세계 통하는 금기도 여기선 안통한다. 느릿느릿 아저씨도 그대로. 풍성한 메뉴도 그대로, 맛도 그대로다. 아침겸 점심을 제대로 때웠다.
블루 스타 사무소를 찾아 페리 티켓팅을 한다. 올때 경험했듯 당연히 Deck클래스를 끊을 요양으로 줄을 섰지만, 목감기가 심해 하는수없이(?) 무리해서 Cabin을 선택했다. 혹시나 해서 들고온 카드는 여전히 맹활약 하고있다.
그리스를 떠난다는 아쉬운 마음에 항구 근처를 배회한다. 이국적인 간판들도, 만화에서 나오는 이미지 그대로의 그리스 사람들도. 수블라키도, 순박한 섬아이들의 눈망울도, 산토리니 숙소의 아름다운 자매들도, 미코노스의 올누드 아가씨도, 테이블위에 올라가 춤추던 t-back의 느끼한 녀석도, 섹시댄스로 비치를 불태우던 아가씨들도, 조용한 이아 마을의 석양도. 풀뜯던 소들도, 뛰어다니던 도마뱀들도. 해수욕장 연안에서 마주친 거대한 물고기도. 밤새 괴롭히던 모기들도. 함께했던 두 형들과의 추억도. 향긋한 우조도 이젠 안녕이구나.

항구로 돌아와 잠시 햇볕을 쐬고있는데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로마의 숙소에서 만났던 한국 여자분이다. 우리는 그리스에서의 경험들을 얘기하며 반가운 인사를 대신한다.
그녀는 Ancona로 간단다. Bari까지도 배로 200년은 가야할 터에 Ancona라니.. 끔찍하다. 하긴 배에서 내려서 기차로 북진할 생각을 하면 오십보 백보일게다. 앞으로의 여행길을 축복하며 각자의 페리에 오른다.
예상대로 4인실의 cabin은 텅 비어있다.

혹시나 해서 긴긴밤을 같이보낼 친구들을 찾아봤으나 역시나 아시안은 모두 중국인. 이제 제법 익숙해진 블루스타 페리호 안을 서성인다.
슬롯머신을 연신 땡기는 뚱뚱한 아줌마의 표정이 재미있어 한참 구경을 하다가,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를 발견한다.
30분에 5유로라는 도댕놈스러운 가격에 혀를 내두른다. PC방 천국 네이션에서 온 나로썬 시간당 만삼천원이란 글귀에 안하던 배멀미를 할 지경이었다.
마침 위성시스템이 맛이갔는지 이용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시스템이 금방 복구되었고 덩달아 타이머 까지 맛이 가버렸다. 왠 떡이니.
그러나 한국어 사이트는 당연하게도 ????????.%*&%#%$#^?.?? 로 표기되고있다. 어렵사리 들른 동호회 홈피에 글을 남겼다.
-------------------------------------------------------------------------------------------------------------- I'm on BlueStar Ferri(Greece->Italy) [internet connection card 5 Euros/30 minutes DoDookNomDul...] It takes 16hours to Italy.. holy shit. very sim sim. There are few Asain. but almost JJang-GGe. No Korean T.T Eurailpass will be invalided at 25, June.... so, I can't go to the Paris Airport.... Bye Bye Koera and C U next life Photosap members ToT P.S. Mykonos Paradise Beach(at Greece "NUDE BEACH") was Super Cho Ultra Perfecly Great! GGya ak!!!!! --------------------------------------------------------------------------------------------------------------
지금의 생활에 대단히 만족스러운 나를 꽤나 오랫만에 만난 인터넷이 오래 붙잡진 못했다. 이내 자리를 뜬 나는 갑판으로 올라선다.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려 한다.

이내 바다는 태양을 집어삼켜 버렸고, 마지막 힘을 쓰는양 태양은 수평선을 와인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어둠을 맞이하기 시작한 포세이돈에 몸을 맡긴 페리는 여전히 힘차게 전진한다.
석양을 뒤로하고 맥주몇병으로 목을 채운다. cheers.
침실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짐정리를 하다 시간이 애매해졌다. 아뿔사. 선내 모든 식당의 키친 closed. god damn.
차디차게 식은 샌드위치와 와인한병으로 저녁식사를 대신한다. 오늘은 하루종일 식사타이밍을 못맞추고있다.
마침 tv에서 그리스 vs 브라질 친선경기를 방영하고있다.
그리스언지 이태리언지 엄청난 스피드로 중계해주는데 아마 그리스어지 싶다.
얘내들 나름대로 유로2004를 석권한팀 아니던가. 흥미롭지 싶었다.
나는 지금 그리스 영해위의 그리스 배 안에서 그리스 사람들 틈에 끼어 그리스어로 중계되는 친선경기에 그리스가 0:3으로 무참히 유린당하는상황에 놓여있다. 참으로 씁쓸하지 아니할수 없다.
사람들은 당연히 입맛이 쓴지 여기저기서 술을 주문하는 분위기다.
나도 잭다니엘 한잔을 주문한다.
감기약과 잦은 술 때문인지 잠이 솔솔 몰려오기시작한다.
내일 잠에서 깨면 다시 Italy.
2005.06.16. -zork2k- 어둠이 깔린 아드리아해의 어딘가에서.



